생각 정리

나를 찢어내는 고통은 새로운 내가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기회를 준다

소쟁이 2021. 9. 13. 19:31


독일의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그의 저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통해 20대, 30대, 40대의 삶을 노래한다.

20대는 열정적이고 지루하며, 언제 소나기가 내릴지 알 수 없는 시기이다.
20대는 늘 이마에 땀이 맺혀 있고 삶이 고된 노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지만,
그것을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연령이다.
따라서 20대는 여름이다.

반면에 30대는 인생의 봄이다. 어떤 날은 공기가 너무 따사롭고 또 어떤 날은 지나치게 춥다.
언제나 불안정하고 자극적이다.
끓어오르는 수액이 잎을 무성하게 만들고 모든 꽃의 향기를 구별할 수 있는 나이이다.
30대는 지저귀는 새소리만으로도 잠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처음으로 향수와 추억을 구별하는 시기이다.

40대는 모든 것이 정지된 연령이다. 바람은 더 이상 그를 움직일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이 그의 수확을 돕는다.
40대는 한마디로 인생의 가을이라고 볼 수 있다.

니체는 말했다. 20대는 삶이 고된 노동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 나이라고.
나는 여기서 ‘어렴풋이 깨닫지만’, ‘필연으로 받아들이는’ 이라는 말에 눈이 갔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어렴풋-하다’를 “기억이나 생각 따위가 뚜렷하지 아니하고 흐릿하다”로 정의한다.
즉, 삶이 고된 노동이라는 것을 알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생각이 명확하진 않고, 단지 느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해의 영역을 넘어선 감각이기에 그저 필연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지금의 내가 그러하다.

내게 있어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부정적 의미가 아닌, 나를 더 성장시키고자 하는 열정을 끌어올려주는 고통이었다.
나를 육체적 고통에 종속시킴으로써 이것을 극복하고, 다가오는 더 큰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성장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을 극복해나감으로써 행복을 느꼈고, 고통 속 사소한 기쁨을 느낌으로써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내면속엔 이러한 고통은 시간이 지날 수록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 입학만을 바라보는 수험생 처럼, 지금 고통스러운 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안일하게도, 이러한 20대가 끝나고 30대가 되면, 고통이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덧 돌이켜보니 첫 30대의 반이상이 지나갔다.
내 안일한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고통은 줄어들기는 커녕 더 큰 고통들이 닥쳐왔다.
특히, 고통은 영리하기 때문에 내가 무심코 단련해오지 않았던 부분을 치고 들어왔다.
고통은 그동안 내가 무심해왔던 인간관계, 연애/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마치 성난 파도가 방파제를 사정없이 휘몰아치듯
나를 혼돈속으로 잠식시켜버렸다.

이러한 혼돈은 내면 깊숙히 숨겨놓은 불안, 걱정이라는 정서를 거칠게 수면위로 끄집어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불안과 걱정이 가슴속에서 터져나왔다.
타인에게 거절 당하진 않을까, 사랑에 상처 받진 않을까, 비난 받진 않을까, 내가 자격이 있는걸까, 내가 무능한걸까.
너무나도 낯선, 감정이라는 담요가 내 몸을 뒤덮었고 한동안 앞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내 삶은 그 시간에 제자리에서 그 챗바퀴만을 달리고 있는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소중한 내 삶의 시계를 이렇게 멈춘 채 둘 순 없기에, 한동안은 현재만을 지키기 위해 살아왔다.

한동안 앞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기에, 현재, 즉, 내 발 바로 아래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미래를 위해서가 아닌 현재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앞만을 바라보며, 그동안 바라보지 못한, 너덜너덜해진 내 발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나는 가장 소중한 나를 돌아보지 못한 채, 고장난 전차마냥 그저 앞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큰 고통은 이렇다. 나를 아프게 하면서도, 나에게 교훈을 준다.
이러한 고통은 나를 찢어냄으로써 새로운 내가 밖으로 나올 수 있을 기회를 준다.

고통으로 찢어지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위대한 철학자 니체는 말한다고,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나는, 당신은, 여태 잘 그래왔듯이, 삶을 찢어내기 위해 끝없이 돌진해오는 고통에 당당히 맞서면서,
결국엔 더 강한 자신을 만들 수 있음을.
나는 나의 봄을 맞이할 준비를 잘 하고 있는 것임을.
고통은 인생을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는 것을.
그래서 고통은 아름다운 것임을.

내 이런 이야기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